아버지를 잃은 상실감 with 염재성의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안녕하세요.
힐링 타로마스터입니다.
여러분,
혹시 부모님 중에 한 분을 잃어본 경험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아버지를 10살 때 갑자기 잃었던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아버지께 지병이 생기기 전
유년기는 집안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어느정도 안정적이였습니다.
아버지는 친구가족들을 대동해서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셨고 그 덕분에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그때 산이고 계곡이며 바다를 찾아 다녔던 기억만큼은 생생합니다.
드라마틱하게 재미있거나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런 행복한 느낌은 아녔지만, 사람살아가는 살냄새 정도는 따스하게 느껴졌던 유년기였어요.
그러던 어느날 여행을 떠나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살색같이 따스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서서히 차가운 회색빛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회색빛 먹구름이 햇빛을 가리며
불행의 신호을 알리는 듯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보니..역시나..
아버지께 간경화라는 병이 찾아왔고
집분위기는 삭막해졌습니다.
불행은 삶을 바닥으로 내몹니다.
끝을 보게 해요.
결국 지병을 앓으셨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집 구석구석에 붙여지는 차압 딱지들. 아버지 병원비 등으로 진 빚들이 늘어나 설상가상 집까지 뺏기고 길바닥으로 내몰리는 불행과 직면하게 됩니다.
평범했지만 따스했던 일상의 판도가
차갑고 딱딱한 회색빛으로 바뀌는 순간
이번생은 거기서 끝난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따스하게 봐줬던 주변인들의 시선도 차갑게 돌변합니다.
불행은 모든 걸 앗아가 버립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부모란 날개와 같은 존재입니다.
양쪽 날개 중에 하나가 사라져버리면 그때부터 상실감에 젖어들고 무기력해지며 세상이 무서워집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엔 너무나 이른 10살.
10살이 받아들이기엔 힘겹고 두려운 불행이였죠.
10살 어린 아이에게 더 큰 힘겨운 순간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반려자를 잃은 슬픔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입니다.
어린 10살은 슬픔에 빠진 어머니를 볼 때 애처롭기보다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아버지처럼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
홀로 남겨지는 상황을 상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상상은 유기불안으로 이어집니다.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아버지도 이승에 남겨질 우릴 걱정도 하지 않고 떠나버린 것에 원망이 올라와 있는 상태였는데
어머니 마저 잃는다면 세상을 살아갈 자신도 없었습니다.
엄마를 잃지 않고자
엄마를 위해 애썼습니다.
어머니를 위한 K-장녀로 거듭났습니다.
어머니에게 제가 큰 자랑거리였습니다.
K-장녀의 삶이 보람이나 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고 주어진 상황의 그 이상으로 애썼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에 대하여
애도할 겨를 조차 없었습니다.
2차적으로 상실감을 피하고픈 몸부림이였죠.
하지만 상실감을 피하려는 무의식적 행동은
심리적으로 피폐하는 지름길이였습니다.
주변사람, 지인, 연인, 가족과 같이 소중한 대상을 잃었을 경우, 이에 대하여 슬픔이나 분노, 혼란, 우울, 무기력 그리고 공허함 등을 정서적으로나 행동으로 표현하는 애도의 시기를 겪어야만 합니다.
애도의 시기를 겪지 않는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애도의 시기를 제대로 겪지 않는다면
그동안에 정서는 억압되고
내면적으로 감정들이 해결되지 않아서
특정시기에 폭팔적인 형태로 분출되어
인간관계 속 갈등을 비롯하여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릅니다.
심각하게는 주변을 힘들게 하거나 해를 끼치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우리가 그렇게 애써 외면한 내면의 아픈 상처들이 시간이 흘러서도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콘크리트처럼 단단히 굳어져 오랜 세월을 잠복합니다. 그러다 작은 불씨라도 주어지면 폭탄이 되어 터지고 맙니다. 오랜 세월 잠잠했더라도 소용없습니다. 내면과 연결된 뇌관을 건드리기만 하면 폭발이 일어나고 맙니다. 그래서 무서운 겁니다.
p. 91
📕 글귀발췌 | 임재성의 《삶의 무기가 되는 글쓰기》
애도의 시기를 충분히 거쳐야하는 이유는 뭘까요?
애도의 시기를 충분히 거치다보면
사랑하던 존재가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나, 그가 예전과 같은 관계로 다시 회복될 수 없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는 힘도 생겨 납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정상적인 애도반응>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1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던 무렵에 《애도와 우울증》을 통하여 정상적인 애도와 우울증의 차이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애도를 정상적인 애도와 멜랑콜리아(우울)로 나누었는데, 정상적인 애도 반응은 아무리 심한 형태라도 별도의 치료를 요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끝나지 않고 지속되는 애도는 정상적인 애도와 구별되는 것으로서, 멜랑콜리아와 관련되어 있다고 보았다.
📕 자료출처 ㅣ 네이버 지식백과 <애도>
상실감으로 겪는 정서적, 인지적 그리고 행동적 측면으로 다양한 반응을 경험하는 건 지극히 정상입니다. 잃었으니 당연히 슬프고 괴롭고 화가나고 혼란스럽거든요.
그래야만 내면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고 서서히 비워지고 현실을 직시하는 건강한 마음상태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감정억압.
자신을 궁지로 내모는 것과 같습니다.
일상이 흔들릴정도로
엄청나게 괴로운 상실로
불행과 마주했다면
"이렇게 혼자 남은 나는 어떻하냐"고
널널한 공터나 바닷가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힘겨움을 토로해야합니다.
어린시절엔 몰랐습니다.
유기불안에 떨다보니
처음 경험했는 상실감으로
충분히 슬퍼하지 않은 것이
나 자신을 이토록 괴롭히는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죠.
힘들고
괴로우면
표출해서
내면에 응어리가 쌓이지 않도록
나 자신을 배려해야 된다는 것을요.
그래야 건강한 마음과 신체로
일상에 복귀하여
한층더 성숙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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