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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골든아워1-이국종,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2002-2013)



주변에 가까운 사람의 사고로 아주대학교 외상센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외상센터에서 닥터헬기를 띄워서 나의 지인을 응급조치할 수 있었고, 간신히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외상이 너무나 심했습니다. 그런데, 헬기로 환자를 병원까지 옮기는 절박한 순간에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 그들이 노력한 덕분에 지인은 고비를 잘 넘겨서 지금은 회복하기 위해 재활치료를 잘 받고 있고, 그를 웃으면서 볼 수 있습니다. 외상센터 의료진들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기본 원칙에 충실하기 위해서 지금도 밤낮없이 뛰고 있습니다. 그들의 노고와 희생을 기억하기 위해서 골든아워를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골든아워 1 내용


골든아워는 현재 아주대학교 외상센터를 이끄는 이국종 교수가 직접 쓴 에세이입니다. 총 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에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외상센터에 몸을 담게 되면서 외상센터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바로잡게 하기 위해 그와 그의 의료진들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만을 살리겠다는 원칙만으로 외상센터를 운영하지만, 우리나라 정책과 구조적인 문제와 봉착하면서 매순간 어려움에 봉착하는 숨막히는 의료계 현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의 에세이는 2002년에서 2018년 상반기까지 진료기록과 수술기록, 현장경험 등을 바탕으로 모은 기록들이라고 과언이 아닙니다.


■ 느낀점 


"우리나라, 참 갈 길이 멀었구나." 라는 막연함과 막막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우리나라 큰 병원들을 둘러보면 암센터가 아주 의리의리하게 우뚝솟아 있는 모습을 보곤, 암환자가 참 많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그런데, 지인의 사고를 접하고 이 책을 접하면서 우리나라 중증외상환자들은 수시로 발생하여 중증외상센터는 항상 밀려드는 환자들을 응급처치하고 살려내기 위해 처절한 일상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나의 지인도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중환자실을 오고가는 보호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만큼 다쳐서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인데,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으면 처절함이 어딘가엔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살뻔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중증외상센터가 늘 대면하고 있는 냉혹한 의료현실을 적나라게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칼의 노래"의 저자 김훈 작가의 필력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국종 교수가 사실적인 표현으로 적어내려가는, 중증외상센터의 상황은 처절함 그 이상입니다. 다쳐서 오는 사람들은 쓰나미가 밀려오듯 밀여오지만, 그 쓰나미를 맨몸으로 받아내고 버틴다고 상상해보세요. 중증외상센터가 딱 그런 현실입니다. 밀려오는 환자에 비해 , 의료진의 수도 적고, 센터를 운영하는 자금 또한 부족합니다. 무엇보다 닥터헬기를 띄우는 건 소방대원들이 하는데, 소방대원의 수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입니다.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중증외상센터 말고도 처절한 곳이 많다며 그의 요청은 수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이슈로 활용할 땐 그땐 잠시 외상센터에 관심을 가져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는 듯 큰 소릴치다가 그 이슈가 사그라들면 지원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덴만 여명작정 중 부상을 심하게 입은 석해균 선장을 에어 앰뷸런스를 아슬아슬하게 급조하여 오만의 왕립술탄카부스병원에서 한국으로 데려 온 장본인도 국가가 아니라 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와 그의 팀원들이었습니다. 석해균 선장 구출을 계기로 외상센터가 조금이라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는 듯 했지만 오히려 큰 짐을 더 떠안을 꼴이 되어버리는,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 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문제는 자연적 순리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라 정책과 구조가 어떻게 자리잡고, 운용되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사는 인재人災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됩니다.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의료 체계 속에서 이국종 교수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싶지만, 다치고 아파서 오는 사람들, 정말로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그냥 죽게 할 수 없어서 포기하지 못하고 버티고 있습니다. 그의 의료진들도 마찬가지고요. 자본주의 사회라 돈이 되는 "과"만 몰빵해야 하는 것이 맞는 걸까요? 자본주의 사회라 돈이 안되면, 지원 안하고 무너질 때까지 방치하거나, 버티게 놔둬야 하는 것이 맞는 걸까요? 우리의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 정말로 방법이 없는걸까요? 아프고 다치고 치료받고 하는 건 우리모두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껏 남일처럼 봤는데,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사회의식을 심을 수 있었고, 우리들의 생은 숨은 곳에서 처절하게 힘쓰는 누군가의 희생과 노고 덕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았던 것에 반성하여, 사회의식을 조금 키울 수 있는 성숙한 국민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결심도 덤으로 해봅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긍정적인 사고로 사회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때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비판하는 자세와,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고민해보는, 사회의식을 길러야 하는 국민이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엔 당연하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사회 한켠엔 자신을 내던지며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며 희생하는 많은 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꼭 인지하면 좋겠습니다.


책 속 글귀


p. 10 이 기록은 열악한 한국 의료계 현실에 굴하지 않고, 순전히 우리 팀원들과 현장의 소방대원들의 피와 땀을 짜내 만들어온 것이다. (중략) 또한 이 기록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선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환자와 내 동료들의 치열한 서사다.


p. 51 어떤 환자라도 조건은 같고 환자는 언제나 상황에 우선한다. 원칙은 흔들리지 않았다. 의료진은 원칙대로 환자에게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더 빨리, 더 가까이 가려고 애썼다.


p. 141 삶의 보편성으로부터 먼 일상과 상식 밖의 시선까지 버텨야 하는 진흙탕에 뒹구는 것은 나 하나로 족했다. 


p. 148 나는 헬리콥터를 이용한 이송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개 지방 병원의 외과 의사가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죽지 않아도 될 환자를 죽지 않게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했고, 그 의지를 실현시킬 '정책'이 필요했으며, 관련된 자들의 '합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정책을 누가 만드는지는 알 수 없었고 확실한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서 나는 그들의 실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결정적인 제약과 한심한 조치들은 늘 보이지 않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로부터 몰려왔다.


p. 246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통상적으로 외과 의사들이 환자나 보호자들에게 하는 가장 흔한 말이겠으나, 나에게 이 말은 위로의 말만은 아니다.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에 가깝다. 2003년 말부터 시작된 끊임없는 사직 압력 속에서도 '잘리는 순간까지는 최고의 수술적 치료를 제공한다'는 내가 스스로에게 내건 직업적 원칙이었다.


p. 304 나는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구르고 떨어져 짓이겨진 채 실려 와 병원비에 속수무책으로 주저앉는 환자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고 자주 생각했다. 구조적인 문제였다. 이곳마저 대한민국 여느 분야와 다르지 않아, 원칙은 무너지고 힘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자리는 존재의 지속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비루한 모퉁이 한쪽일 뿐이다. 불합리를 삼켜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여서 우리는 스스로를 죽음 가까이에 두는 일이 많았다. 


p. 389 중증외상 환자 이송 체계는 항공대원들과 의료진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세워지고, 그체계가 얼마나 공고히 정립되는가에 따라 환자의 생존율이 결정된다. 나와 내 사람들이 죽음에 가까이 갈 때 환자는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는 이 아이러니를 나는 어찌하지 못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타인을 살리고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기 목숨을 걸어야 했으나 세속적 가치는 없었다.


p. 400 내가 하는 일은 개인들의 노력과 희생에 기대어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다. 한계는 명확해 보였다. 조직 전체에서 핵심부서와 인력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사태가 지속되면, 조직의 미래 이전에 당장 조직의 구성원들이 일하는 패턴을 바꾸거나 사직을 결정짓는 것이다. 


p. 416 수익구조를 찾아 달리는 의료계에서 정의의 사도인 척 달려드는 많은 병원들에 그 한마디를 뇌까리고 싶었다. 나는 내게 날아오는 것이 돌이든 화살이든 상관하지 않았따. 그것은 이제 두렵지 않았으나 단지 지겨웠다. 두려운 건은 단 하나였다. 팀원들이 아파 쓰러지고 다치는 것이야 말로 정말 큰 공포였다. 


p. 417-418 중증외상 환자의 치료에는 손이 정말 많이 필요했다. 일반적인 중환자에 비해 관리해야 하는 장비와 약재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고 환자 상태는 끊임없이 흔들리므로, 간호사들은 중증외상 환자 담당을 힘겨워했다. 한국의 대학병원은 겉만 화려한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돈이 연관된, 돈이 벌리는 부분은 초고속으로 발전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발전은커녕 바닥 없이 퇴보한다. 한국 대학병원들의 고용인원은 선진국인 미국이나 일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웬만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병원들에 비해서도 중환자실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이 엉망이었다.




이국종교수 유튜브 영상 ▶ 냉혹한 현실, 부조리하게 돌아가는 현실, 바꿀 순 없지만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이국종 교수

https://www.youtube.com/watch?v=Shwn5hEr7Sk&t=86s




본 포스팅은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골든아워 1
이국종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