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사람들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상대에게 인지를 시켜주는 것입니다.
저에게 없는 좋은점을 상대방이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훌륭해 보여서, 우러러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혹은 무얼 해야할지 모른다는 사람에겐 아주 적극적으로 그 사람의 장점을 어필합니다.
그러나, 그 또한 지나치면 상대방은 아주 부담스러워하고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싶어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많이 속상하기도 했습니다.
내 맘을 몰라준다고 해서.. 결국 제가 좋자고 방방 뜬것이지 당사자들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지나친 칭찬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물론, 제 마음은 그 사람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좋은 의도이긴 하나,
결국엔 저의 욕심이였고 이기심이었다는 거죠.
그리고 제가 그들의 삶을 보고 답답해할 뿐 그들의 삶은 그대로가 좋을 수도 있는데,
제가 거기에 괜한 헛바람을 주입했을지도 모르구요.
저도 세번까지 제의를 해보다가,
당사자가 자신의 상황이 좋고 그렇게 흘러가게 두고 싶다고 하면 물러나는 것도 미덕이라는 것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도 필요하더라구요.
이번에 소개해드릴 소설 신의 카르테 1 : 이상한 의사 에서도 제가 아무리 푸시를 해도 미동하지 않을 의사가 출현(?)합니다.
그를 통해서, 사람은 저마다 삶에 대한 기준있다는 것을 세삼 알게되었습니다.
그들의 삶, 그 자체도 인생임을 알게 해주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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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의 카르테 1 내용
신의 카르체 1의 부제는 이상한 의사입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대표작가인 나쓰메 소세키를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괴짜의사 구리하라 이치토의 시점으로 소설은 전개됩니다. 이치토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고 자란 덕분에 고풍스러운 말투를 쓰는 괴짜 의사입니다. 그는 신슈라는 지방도시에 위치한 일반병원, 혼조병원에서 5년째 근무중입니다. 1주년 결혼기념일 마저 훌쩍 넘겨 버릴 정도로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그가 근무하는 병원에선 덩치가 거구인 동료의사 스나야마 지로, 깜찍한 간호사 미즈나시 요코와 개성이 확실한 상사 왕너구리 선생님과 늙은 여우 선생님, 그의 주거지인 온타케소(한때 여관이었던 곳을 빌려 하숙집으로 운영하고 있는 2층짜리 목조건물)엔 그의 사랑스런 아내 하루나, 주거지 동료(?) 남작과 학사 등 주변인물들과 소소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의 일상은 주로 빡빡하게 돌아가는 병원에 초점이 맞춰서 있습니다. 많은 사연과 아픔을 가진 환자들이 이치토를 마주합니다. 그 중 담낭암을 앓고 있는 72세 환자 아즈미를 통해 삶에 대한 혜안과 확신을 가지게 되는 이치토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 느낀점
이 소설의 작가는 현직 의사입니다. 그래서 병원의 살인적인 스케줄과 병원시스템, 의사로서의 고뇌 등을 사실적으로 잘 표현합니다. 그리고 일본의 분위기가 서정적이면서 차분하게 잘 전달됩니다. 소설의 초반엔 소설의 제목과 이야기 전개의 연계성을 인지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몰입감이 조금 떨어지긴 했으나, 중반에서 후반부로 들어서면서 감동과 여운이 밀려왔습니다. 주인공 이치토는 아주 유능한 의사입니다. 그래서 주변에선 대학병원에 가서 최첨단 의학기술을 익혀보라며 바람을 넣습니다. 소설 속 이치토는 현 근무지와 대학병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저의 개인적인 관점에선 그의 마음은 혼조병원에 많이 쏠려있습니다. 저 같아도 이치토는 유능하니까, 이왕 큰 병원에가서 이름을 떨쳐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가 마음을 굳힌 삶의 기준은 따로 있기 때문에 아무리 유능하고 잠재성이 뛰어나도, 그건 전적인 저만의 생각인지 그의 생각은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는 늦은 밤 퇴근 길에 사진을 찍고 있는 아내 하루나와 마주하면서 밤길을 걸어가는 것, 허름한 여관식 하숙집에서 아내와 커피를 내려 마시는 아늑함, 그리고 주변인들과 주고 받는 담소, 그에겐 그 생활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그가 담당하는 환자들, 고지식하고 괴짜스럽긴 하지만 인간적인 면모가 있는지 이치토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이치토도 그들을 통해서 삶을 알아갑니다. 그에겐 그 삶이 싫을 이유가 없어보입니다. 오히려 매료됩니다. 그런 그에게, 유능하니까 더욱더 실력을 발휘하면서 살라고 부축일 필요가 없겠더라구요. 소소한 삶으로부터 감동과 여운을 느껴보라고 말해보고 싶고, 삶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에겐 아무리 타인이 욕심을 낸다고 해도 그들에겐 그 자체가 삶이고 즐거움이라는 것을 소설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타인이 잘 되라는 뜻에서 내는 욕심도 결국 저만의 욕심이라는 것과 타인이 행복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걸 지켜보는 것 또한 그 자체가 삶이라는 것을 이상한 의사를 통해서 배웁니다.
■ 책 속 한 줄
p. 14 그렇게 계속 돌다가 내가 어딜 향해 가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게 지금의 세상이다. 이럴 때 나만 멈추면 세상 사람들에게 괴짜 취급을 당한다. 나야 괴짜 취깁을 당해도 상관 없지만, 아내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일단 같이 돌고 있다. 분명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을 것이다. 여러가지 불만과 불안을 안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p. 87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비애, 어디로 쏟아내야 할지 알 수 없는 분노라는 것이 확실히 존재한다.
p. 95 아내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윤기 있는 흑발이 별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 보였다. 그 광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는 온기가 가슴을 퍼져갔다. 아무리 바쁜 와중이라도 이 한때의 소중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p. 170 동이 트지 않는 밤은 없어. 멈추지 않는 비도 없지. 그런 거야, 학사님.
p. 172 이치도 없고, 논리도 없다. 시간만이 있다.
p. 182 바쁜 와중에 버려졌던 작은 기억들이 시간이라는 화학 변화를 거치며 좀 더 선명한 색채를 띠고 떠오르기 시작했다. (중략) 살아 있을 때는 왠지 몽롱하고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던 것이, 세상을 떠나자마자 선명한 윤곽과 함께 가까이 다가오다니, 신도 참 얄궃다.
p. 206-207 이치(一)’와 ‘토(止)’라는 글자를 그대로 합치면 ‘정(正)’이라는 글자가 된다. 아버지가 반쯤 장난으로 지으신 것이다. (중략)'하나(一)에 멈추다(止)를 써서 바르다(正)라는 의미라니, 이 나이 먹도록 몰랐습니다. 하지만 왠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네요.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앞으로 가는 데만 급급해서 점점 소중한 것을 버리게 되는 법이지요. 진짜 바르다는 건 맨 처음 장소에 있는지도 몰라요.'
p. 252 생각해보면 인생이란 특별한 기술이나 재능으로 마법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람이 태어난 그 발밑 흙덩이 아래 묻혀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그것은 최첨단 의료를 배우는 게 아니라 아즈미씨 같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나아가 아내와 함께 이 발걸음을 계속하는 것이다. 당연한 일처럼, 이전부터 결론은 줄곧 거기 있었던 것이다. 갈피를 잡지 못할 때일수록 멈춰 서서 발밑을 향해 쇠망치를 휘두르면 된다. 그러면 자연히 거기서부터 소중한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p. 253 방황하고 고민할 때야말로 멈춰 서야 한다. 강을 막고 산을 깍아 돌진하는 것만이 인생이 아니다. 여기저기 묻혀 있는 소중한 것들을 정성껏 파내어 쌓는 것 또한 인생이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의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책을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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