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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안락-은모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자유



소설에서 문학적 감성을 느껴보기 위해 인터내셔널의 밤 다음으로 읽은 은모든의 안락입니다. 인터내셔널의 밤보단 쉽게 읽을 수 있었던, 맥락적으로 이해하 쉬웠던 소설이예요.


 

■ 안락 내용 


이 소설은 안락사 혹은 존엄사를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상실감을 느끼고 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괴로운지를 소설의 초반에 그리면서, 소설의 주인공 지혜 외할머니가 당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혜네 엄마를 비롯한 아빠, 언니와 이모들이 다양한 심경을 소설 속에서 보여줍니다. 죽음의 때를 정해놓고 살날이 아직 많이 남은 가족들은 할머니의 부재를 인정할 수 없어하지만 할머니의 결정은 완강합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주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 느낀점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2월 4일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이란 회생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사망에 임박한 환자에게 연명 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법을 말하는데요. 환자 스스로가 연명의료 결정을 내릴 수 있어요. 이 소설에서 할머니가 유럽여행을 아주 신나게 즐기고 돌아와서, 자신은 5년 후에 죽음을 결정했으니 가족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선언합니다. 가족들은 정정한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당혹감을 금치 못합니다. 정정한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죽음을 선택한다고 했을 땐 가족들의 입장에선 당연히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가족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는 노령자 혹은 환자들의 입장이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안타까워요. 작년 11월에 돌아가셨던 우리 할머니는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발이 묶인채 연명을 하셔야 했습니다. 치매가 걸린지 얼마되지 않았을 땐, 거동은 가능하시니 할머니의 죽음을 감히 예상하긴 힘들었지만, 거동도 안되고 당신의 의지마저 없을 땐 산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애매하게 존재하는 그차제가 안타까웠어요. 연명의료결정법안이 통과되어도 할머니께는 절대 적용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할머니께 죽음을 생각해볼 충분한 시간을 드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가족들인 우리가 함부러 판단하기 힘든 아주 애매한 상황이었죠. 그런데, 지혜의 할머니를 보니, 참 부러웠습니다. 자신의 존재의 가치가 딱 5년이라는 걸 스스로 판단하고, 남은 생은 재미있게 살아가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죽음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할머니에게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러웠습니다. 소설 초반에 지혜의 친구 이삭은 동생과 아버지를 이별의 준비 시간도 없이 갑자기 떠나 보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갑자기 잃었을 때의 상실감과 고통은 어머어마 해요.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닌 줄 압니다만, 죽음이라는 걸 스스로 직시할 때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지,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가족들과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할 수 있는 여유와 자유가 있다면 그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 같아요.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되기 전 연명치료가 진행되었던 것은 삶에 대한 우리들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자신을 비관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아닌, 죽음을 생각하되 남은 생을 어떻게하면 보람차고 의미있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모든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 좋은글귀  

 

p. 23-24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졸음에 취해 있던 나는 그제야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었다. 할머니가 개운하게 정리한다는 것은 상속 문제 따위를 미리 매듭짓겠다는 말이 아니었다.할머니는 가족들 앞에서 오 년 안에 자의로 당신의 생을 마감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p. 39 무엇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가족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기는커녕 바울과 아빠를 한꺼번에 앗아간 신의 의도였다. 이삭은 그 점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애를 쓰면 쓸수록 어떠한 의도를 가진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신을 믿어온 날들에 화가 치밀어오를 뿐이었다.

 

p. 121 할머니의 말은 나무라는 투가 아니라 따뜻했고, 나는 괜히 코끝이 시큰거려서 고개만 끄덕였을 분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잠시 뒤에 할머니는 이제 그만하면 됐다는 듯 내 손을 물리더니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내게 실망할 것 없다고 했다. 무슨 얘긴가 싶어 돌아보니 원래 담금주는 숙성시켜서 먹어야 진가가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다 제때가 있는 거지. 사람이고 술이고 간에.그런 이치야."

p. 148-149 또한 여든을 넘기고 가게 일에서 물러난 뒤에는 곳곳에 탈이 나는 자신의 몸을 돌보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했다. '개운하게 가겠다'라던 결심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 모든 짐을 내려놓고 떠나는 할머니의 입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안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