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너무나 불우한 환경에서 살다보니 성인이 되면 불우한 환경에서 벗어날 힘이 생길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바라는 성인이 되었을 때, 마음이 너무 설레였습니다. 미성년일 때 못하는 것을 성인 신분(?)에선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사회를 경험해보니 세상살이가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고, 미성년일 때 몰랐던 성인사회에 대한 환상이 와장장 깨지 시작했습니다. 오히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막막함이라고 해야할까요. 무서웠습니다. 뜻하지 않는 난관에 부딪혔을 땐 너무나 아팠고 상처받았습니다. 그럴때마다 삶의 지혜가 있는 진짜 어른이 길라잡이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간절함이 더해지더라고요. 현실에선 깨어있고 지혜가 충만한 어른을 만나기는 쉽지 않더라고요. 내가 의지하고픈 어른들 조차도, 하루살이가 너무나 힘겨워보였으니까요. 그럴때마다 책을 통해서 멘토를 만나고 위안을 얻었는데요. 이번에도 만났습니다. 90세 일본인 정신과 의사 나카무라 쓰네코. 그녀의 책 내일을 위해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를 통해서, 삶의 지혜를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 내일을 사느라 오늘을 잊은 당신에게 내용 및 구성 이 책은 에세이 형태이며, 에세이 속 주인공은 현재까지도 정신과 의사로 근무 중인 90세 여성입니다. 담담하게 그려가는 그녀만의 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그녀의 동료인 오쿠타 히로미가 직접 정리한 에세이예요. 에세이는 1) 무엇을 위해 일하나요? 2)기대하지 않아야 인생이 잘 풀린다 3) 인간관계의 오묘함 4)마음의 평정 찾기 5)일과 가정을 양립해가는 비결 6)하루하루 담담하게 살아가기, 총 6챕터로 구성되어, 일의 목적, 인간관계, 마음다스리기, 죽음을 대하는 방법 그리고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는 방법을 다루는 삶의 지혜가 담겨져 있어요. 그리고 각 챕터별로 에피소드도 담겨져 있는데요. 각 에피소드의 제목은, 1)종전 직전, 히로시마에서 오사카로 홀로 떠난 소녀 2)시대의 격량에 흽쓸려 의사의 길로 택하다 3)정신고 의사가 일생의 과업이 된 이유 4)결혼, 출산, 전업주부 그리고 뜻밖의 복직 5)번민, 고뇌, 그래도 계속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인생 최악의 나날들 6)남편을 떠나보내고 늙어서도 다시 일터로 이며, 나카무라 쓰네코의 일생을 담은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 느낀 점 그녀가 쓴 책의 일본 원제는 心に折り合いをつけてうまいことやる習慣 인데, 혼자서 사전을 뒤적거려가면서 의미를 번역해보려고 했으나 실패! 그러나 책장을 다시 훑어보다가, 나카무라 쓰네코의 글을 엮은 오쿠타 히로미가 쓴 "글쓴이의 말"의 "내 마음과 타협하여 인생을 풀어가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원제의 제목이 아마, 이것이라 짐작을 해봅니다. 에세이 속 글을 읽다보면, 글의 내용이 우리말로 번역된 제목과 연계성이 많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요. 그래서 원제를 찾아봤습니다. 물론, 쓰네코가 조언하는 내용을 전반적으로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하루하루 주어진대로 충실히 살라"는 내용이긴 합니다만, 오히려 삶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거든요. 에세이를 통해서 만나 본, 90세 여성 정신과 의사 나카무라 쓰네코는 참 멋지고 지혜로우며 개방적인 어른임은 분명합니다. 소위, 꼰대의 느낌이 전혀들지 않고, 세상의 변화와 순리를 잘 따라는 지적인 여성으로 느껴지는 건 사실이예요. "내가 살아보니, 이게 맞아. 저게 맞아"라며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뭉친 어른이 아니고 아주 유순하면서 내적으로 강한 어른이어서, "쓰네코처럼 늙고 싶다"라는 간절함이 생기더라고요. 그녀가 전하는 삶을 대하는 방법은 우리가 자주 들어왔던 이야기들이예요. 힘을 빼고, 완벽을 추구하지 말되, 주어진대서 충실하라는 것, 그게 전부예요. 하지만, 너무나 당연시 들어왔던 말들이 눈과 마음에 쏙쏙 들어오는 이유가 뭔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생각해보니, 그녀 스스로 지금껏 그런 본보기를 보여줬던 것이며, 몸과 마음으로 체득한 지혜가 고스란히 글로 담겨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혼자서 내려봤어요. 무엇보다 가장 와닿는 부분이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는 부분이었어요. 딸이라는 타이들에서, 결혼하면서 아내와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생겼고 곧 있으면 엄마라는 타이틀이 추가되거든요. 나 또한 나만의 일에 갈증을 느끼는 사람이라, 일도 잘하고 가정도 잘 지키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이에 관하여 "잘해내는 방법"에 대해서 늘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그녀의 글을 통해서, 방법을 찾습니다. 그 방법은 "잘 해야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잘"이라는 말에 너무 매여서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때론 힘을 빼고, 그럭저럭 해내고 있다는 것 또한 만족스러운 시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예전에 조교로 처음 일하던 때에, 어느 교수님이 "김선생,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마"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엔 교수님의 충고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을 해보니 온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긴장한 내모습을 발견하곤, "내가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보니 스스로를 힘겹게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늘 실수가 잦았습니다. 실수하고 나면 자책을 밥먹듯이 했고 자신감을 뚝 떨어졌고요. 잘하려고 긴장하며 살아가는 삶, 오히려 나에게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삶이죠. 힘을 빼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하면서, 주어진데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하는 것, 그리고 만족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내가 내 삶을 대하는 태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외에 거리를 두는 인간관계, 외로움과 죽음을 대하는 태도 등에 대한 내용도 담겨져있습니다. 에세이의 전체적인 느낌은 서문에서도 언급했지만, 담담하고 유순하고 차분해요. 그리고 쓰네코 그녀만의 묵직한 내공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삶의 여정은 망망대해지만, 삶의 롤모델이자 길라잡이같은 그녀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마음에 각인하며 살아가면, 삶 그자체가 무섭지만 않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삶은 살아갈만하다는 생각도 덤으로 들고요. ■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막막한 삶을 두고, 어찌할바를 모를 때 지혜로운 멘토를 찾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그 멘토는 삶을 대하는 태도를, 살아가는 방법을, 자혜를 알려줍니다. ■ 책글귀 p. 28 '하지 않는 것보단 낫겠지'라는 마음가짐이 일을 착실히, 꾸준하게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성가시고 불쾌한 일이 생겨도 '뭐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야'하고 느긋하게 넘길 수 있죠. 그러다가 간혹 생각지도 못한 기쁜 일, 즐거운 일이 생기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p. 32-33 무릇 인간이 어떤 큰 결단을 할 때는 '더 분발하자'라는 긍정적인 마음뿐 아니라 '도망치고 싶다'라는 부정적인 마음도 공존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즉, '도망치고 싶다'라는 마음도 인생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의 일부죠. 중요한 건 어느쪽이든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한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p. 42 젊을 때 욕구 불만을 지렛대 삼아 좀 더 열심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럴 만한 에너지와 잠재력이 있을 시기이니까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신을 제대로 인식해 '더, 더'를 하나씩 버려야 편해집니다. 하루하루가 괴롭다면 무언가를 자꾸 보탤 것이 아니라 '이거면 됐어'하고 수긍하는 길도 있지 않을까요? p. 48-50 솔직히 타인을 변화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100% 불가능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바꿀 수 없습니다. 갖은 수단을 다 써가며 몇 년, 십 몇 년씩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각오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죠.(중략) 타인의 성격이나 행동을 변화시키는 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므로 내가 어떻게 하면 될까, 어떻게 행동하면 조금이나마 쾌적해질까, 그러한 관심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자신에게 오는 부담을 고려할 때 훨씬 효율적이죠. p. 56 나는 결국 혼자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타인에게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홀가분해진답니다. 쓸데없는 일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이 더는 무섭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 내가 사귀고 싶은 사람과 사귈 수 있어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습니다.
p. 60 남이 무언가 해주는 걸 당연시하면 고마움을 잊어버립니다. '이 정도야 당연히 해줘야지'라는 사고방식은 인간관계를 망치는 큰 요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상대가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님을 인식하고 살아가면 사소한 일에도 고마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p. 80 저마다 일상에서 겪는 고민들을 즐겁고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한다는 건 상대방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입니다. 조언을 하거나 눈이 번쩍 뜨일만한 묘안은 주지 못하더라도, 누군가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사람은 마음이 조금 편안해집니다. p. 89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이나 아랫사람이 표면상으로는 위사람에게 맞춰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우쭐대서는 안 됩니다. '내가 당신보다 윗사람'이라는 아집은 되도록 버려야 나는 물론 주변 사람도 편안해집니다. 더구나 그러한 아집이 없으면 거리낌 없이 "이것 좀 가르쳐주시겠어요?" "좀 도와주세요"하고 젊은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답니다. p. 106 (저자 쓰네코 스승인 가네코 교수의 조언) "정신과 의사는 조언을 통해 환자가 병이 낫는 방향으로 가도록 도울 뿐 치료한다고 생각하지 말 것. 좋아져서 다행이네요, 애 많이 쓰셨어요, 하고 환자 본인을 칭찬 할 것. 병이 나았다고 해서 절대 자신이 고친 거라며 으스대지 말 것." p. 121 사실 '잘 안 풀리는 시기'에도 자잘한 '잘 풀리는 일'은 많답니다. 이를 테면 큰 재난 없이 잘 살고 있다거나 가족이 건강하다, 맛있는 걸 먹었다, 친한 친구가 있다 ……등 찾아보면 좋은 일도 꽤 있습니다. p. 130 중요한 건 자신감을 기르는 것보다 자신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입니다. 예컨대 예민한 사람은 대담한 행동은 잘 못해도 세세한 부분에 눈길이 미칩니다. 반대로 유들유들한 사람은 세심함은 부족하지만 개방적이고 유쾌하죠. 이처럼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해서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솔직하게 인식하는 겁니다. p. 146-147 체면이나 남보다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이우로 자신을 희생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에요.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이토록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에 수면 부족이나 극단적인 편식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푹 자고, 건강한 식사를 하고, 몸과 마음의 기반을 다지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의 근본입니다. p. 157 완벽함을 추구하다 좌절하기보다는 어설프게나마 계속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는 절대 넘어가선 안 돼! 하는 마지노선을 일단 그어두고 그 선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 선을 밑돌지만 않는다면 어중간해도 괜찮아.'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그다음은 '될 대로 돼라'입니다. p. 160 그렇다 해도 육아는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가 쉽지 않을테지요. 환자들이나 직장의 젊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눠봐도 그렇습니다. '난 이렇게 아등바등 하는데 왜 이모양일까?'하고 가정이 성가신 짐이 될 때도 있는데, 그럴 대는 포기할 수 있는 건 과감히 포기하세요. 육아도 가정도 적당한 정도면 그만입니다. '그럭저럭' 해내면 충분해요. p. 170 아이들은 어른의 행동과 본심을 전부 꿰뚫어 봅니다. 그러니 아이들을 달라지게 하려면 스스로 달라져야 합니다. 이처럼 사람을 키움으로써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p. 223 인간은 근본적으로 홀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를 100% 도와주는 사람도 없거니와 나에게 온종일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죠. 이를 염두해 두는 것이 인생을 잘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건 내 인생이라고 주체적으로 생각하세요. p. 226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라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 '저렇게 살아야 하면 안 된다'라는 식으로 단정 짓는 경향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훌륭하다거나 꿈을 이뤄야 가치가 있다고들 하죠. 이 말들에 그다지 수긍이 가지 않는다면 그 느낌을 믿으세요. 인생의 만족감은 다른 누군가가 결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와 똑같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규칙도 없습니다.
본 포스팅은 서평단 참여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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