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엔 내가 아주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주어지면 빨리 캐치해서 일을 척척해내고, 난관에 봉착하면 기지를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아주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착각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착각 덕분에, 책은 읽지도 않았고, 기록도 하는 것도 귀찮아 했습니다. 머리회전도 잘되고 기억력도 좋아서 독서와 글쓰기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일이 잘 돌아가는 건 운이 좋았던 것이지 나의 실력이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순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뜻대로 안되니 자괴감에 빠져들고, 내 능력탓을 하긴 더더욱 싫었습니다. 지금껏 해왔던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나만의 굴레를 벗어나보니 나보다 잘난 사람들은 너무나 많다는 걸 알곤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이 너무도 안풀렸던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아무말 없이 책을 읽거나, 빈 메모지에 글을 끄적끄적 쓰는 일 뿐이었습니다. 그 당시엔 책은 나를 밀어내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괄시했던 책은 나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런 따뜻한 책 덕분에 난 책이 좋아졌습니다. 결정적으로 번역공부를 하던 중, 영한 번역을 하는데 우리말 표현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글을 많이 접하면서 표현법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건 책뿐이더라구요. 책만 읽다보니, 글을 쓰고 싶은 갈증도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여러 매체의 리뷰를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습니다. 쓰다보니, 또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샘솟았습니다. 샘솟는 욕심을 채우고 싶은 마음에 저절로 글쓰기 관련 도서나 영상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글쓰기 관련 도서가 책상의 빈공간을 채우고 있는데, 그 중에 한 권이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입니다.
■ 대통령의 글쓰기 내용
저자 강원국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한 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총 8년간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다듬은 이력이 있습니다. 저자는 각각 다른 성향의 대통령들과 함께 하면서 말과 글을 다듬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저자는 글을 아예 못 쓰는 사람이 아닌데, 저자의 말로는 그들에게 배웠다고 언급합니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책의 내용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글쓰기에 관한 글이 담겨져 있습니다. 저자는 이들의 글쓰는 스타일이 확연이 다르다는 것을 구분하여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한, 그들과 말과 글을 다듬는데서 경험한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이점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글쓰기를 바탕으로 저자만의 생각과 노하우도 접할 수 있습니다.
■ 느낀점
이 책을 접할 때, " 대통령들이 어떤 글을 쓸까?"에 초점을 두고 읽지 않았습니다. 대통령과 마주하면서, 말과 글을 다듬었던 저자 강원국에게 초점을 맞추고 읽은 책입니다. 그는 대통령 뿐만 아니라 기업가의 말과 글을 다듬었습니다. 대중들을 이끄는 리더들의 말과 글을 다듬는 동안 저자는 "얼마나 긴장하며 살았을까?"라는 측은한 마음도 들면서, 그런 긴장 속에서 세밀하게 다듬었던 말과 글은 "얼마나 설득력이 강할까?", "그 글과 말이 완성되기까지 그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무엇을 배웠을까?"와 같은 저자의 입장과 글쓰기에 관한 의문점들이었습니다. 내가 조교생활을 할 당시 해외대학과 교류하는 일들을 담당하자면서, 담당교수들의 공식적인 언어를 문서로 만들고 영작하는 일을 맡았을 때, 수정절차를 여러번 거쳤고,지적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그런 과정을 거칠수록 문서의 글을 다루는 능력이 조금씩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저자가 많은 긴장 속에서 쌓은 말과 글을 다듬는 실력이 남달랐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봤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성향을 그들 앞에 내세우지 않고, 오로지 대통령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다듬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글을 써주길 바랐다고 합니다. 스스로를 없애고 글을 쓴다는 건 참 힘든 일일텐데, 저자는 해냈습니다. 고집을 접는다는 건, 진짜 쉽지 않거든요.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으면서, 개인적으론 저자의 글쓰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주로 초점을 맞춰서 읽었습니다. 두 대통령을 바라볼 때 어떤 시선으로 봤는지도 궁금했거든요. 저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배우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두 대통령을 우러러보기만 하는 그런 태도는 절대 아닙니다. 각각 다른 성향의 대통령을 경험하면서, 글을 쓰고 말을 다듬는 저자의 시야가 한층더 넓어지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운 점이 글쓰는 태도와 마음가짐이었습니다. 내가 습득이 더딘 이유누 나만의 고집을 접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조언하면 잘 듣지 않으려는 고집이 있거든요. 상대의 입장에서 듣고 바라보는 힘이 약해서 딴지도 잘 겁니다. 저자처럼 고집을 내려놓고, 배우려는 태도로 흐지부지한 나의 능력을 다듬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글쓰기에서요.
■ 좋은글귀
p. 32 생각을 많이 하는 것은 글을 잘 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특히 자신이 써야 할 글이 정해지면 그 글의 주제에 관해 당분간은 흠뻑 빠져 있어야 한다. 이처럼 빠져 있는 기간이 길수록 좋은 글이 나올 확율이 높다.(중략) 와인이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숙성 기간이 필요하듯이, 글도 생각의 숙성 기간이 필요하다.
p. 33 "훌륭한 커뮤니케이터는 상대의 언어를 사용한다" 미디어 전문가 마샬 맥루한의 유명한 말이다.(중략)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내용만 얘기하는 것은 공감을 얻기 어렵다.
p. 50 독서와 글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다. 따라서 독서없이 글을 잘 쓸 수 없으며, 글을 잘 쓰는 사람치고 책을 멀리하는 사람은 없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그랬다.
p. 53 대통령들에게 독서는 글쓰기의 원천이었다. 두 대통령 모두 밑줄을 긋고 메모해가며 책을 읽었다. 주로 글쓰기와 정책 수립에 참고되는 부분에 밑줄이 그어졌다.
p. 79 소설가 김훈은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란 책에서 좋은 글의 조건을 이렇게 말했다. "정보와 사실이 많고, 그것이 정확해야 되며, 그 배열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절반이 자료 찾기와 관련이 있다. 많고 정확한 정보와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p. 81 글쓰기의 시작은 자료 찾기다. 자료 찾기는 또한 글 쓰는 두려움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다. 세상에 흔한 게 자료다. 요즘은 특히나 그러하다. 그 자료 중에 필요한 것을 찾아 내가 쓰려는 내용에 끼워 맞추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어찌 보면 글쓰기는 자료 찾기 기술에 달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p. 142 "모든 초고는 걸레다." 헤밍웨이의 말이다. 그는 『노인과 바다』를 400여 차례 고쳐 썼다. 두 대통령은 눈이 높았다. 한마디로 고수다. 고수일수록 퇴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실제로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길엇다. 초고가 완성되면 발제 정도가 끝난 것이다.
p. 177-178 글쓰기는 나와 남을 연결하는 일이다. 그 글을 봐주는 사람이 이해 못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게 하고 제대로 이해시킬 책임은 쓰는 사람에게 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글이나 말은 듣는 사람, 읽는 사람 입에 떠 넣어줘야 한다. 손에 잡히도록 쥐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본 포스팅은 이벤트 당첨으로 제공된 도서를 직접 읽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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