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화두라고 한다면 내가 눈을 떠서 몸을 움직이며 숨 쉬고 "지금을 살아가는 태도와 마음가짐"입니다.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삶을 대할지 늘 고민하고 있거든요. 때로는 내가 만족할 수 없는 어떤 것, 혹은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 때문에 내가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을 인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만하기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그 덕분에 살아가기도 하고요. 이번에 읽은 하수연의 에세이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이라는 책을 읽고, 내가 살아가는 일상을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 내용 및 구성
18세 겨울 어느 날, 몸에 이상 반응이 와서 병원을 아주 가볍게 찾았는데, 재생불량성 빈혈이라는 중증 희귀난치병 확진 판정을 받고 6개월 안에 죽는다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을 들은 저자. 생사 자체를 확신할 수 없는 막연하고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외롭게 보내야했던 저자의 난치병 극복기를 담은 에세이입니다. 골수를 빼고 항암치료를 받고 골수이식을 하고 골수가 자리잡기까지, 그리고 그 고통과 맞서면서 마주한 내적갈등과 저자만의 자기성찰이 담겨진 에세이예요. 에세이는, 1)갑작스럽게 환자가 됐는데요 2)힘, 그거 안내면 안될까요? 3) 다시 건강해질거야 4)나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5)투명한 나날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프롤로그도 포함되어 있으며, 저자가 에세이 맥락에 따라 직접 그린 그림과, 투병기에 찍은 사진, 그리고 저자가 겪었던 희귀난치병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재빈(재생불량성 빈혈 줄임말)탐구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삽화와 간단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 느낀 점
저자는 18살 겨울에 희귀성난치병 재빈 확진을 받고 그로부터 완치판정을 받기까지 6년의 투병기간을 거처야만 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저자 자신의 모든 감정을 담아 일기를 꾸준히 써왔고, 그 글들을 다듬어서 블로그에 올리고 이렇게 책으로까지 출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긴 투병시간 끝에 그녀는 "저는 세상을 더 선명하고 깨끗하게 바라보게 되었다(p.4)"고 언급하는데, 뭉클하기도 하고,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투병기를 읽고, 그녀의 근황을 확인하고 싶어서 인스타를 확인했더니 너무너무 건강해보고 예뻐보여서 저절로 안도하고, 남 부럽지 않게 남의 눈치보지 않고 재미있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나는 조금만 체하면 머리가 띵하고, 예민하게 아파서, 감정기복도 심해집니다. 조금만 체해도 아파 죽겠다고 딩굴딩굴 구릅니다. 하지만 저자는 희귀난치병을 확진을 받고, 완치되기까지 힘겨운 항암치료를 받으며 내 몸이 내 몸 같지도 않은, 생사를 오고가는 고통을 겪었고 고통스러웠던 만큼 꼭 살거라는 어린 그녀의 의지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의 완치는 부모님을 비롯한 의료진과 골수기증자의 도움을 더해, 그녀가 살아내고자 하는 정신력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의 병은, 그녀의 정신력을 절대적으로 이기지 못했고, 마침내 그녀가 이겨냈습니다. 물론 완치 후에도 무기력증이 밀려와 이를 극복하는데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로지 병마와 싸우느라 시간과 정신을 쏟았기 때문에 완치 후 삶에 대해선 준비할 겨를이 없었던겁니다. 그래도 그녀는 말합니다. "내 과거는 현재를 지탱한다(p.288)"고요. 외롭고 어둡고 무섭고 힘겨운 고통 속에서 사투를 벌이면서 세상의 희망을 바라보는 그녀를 보곤, 그저 눈물이 흐르더군요. 지난 시간의 고통이 너무 고통스러웠다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을텐데, 저자는 지난 고통스러웠던 과거로 지금을 현재를 지탱한다고 합니다. 나에게 그냥 주어진 듯한, 그리고 당연하게 누리는 현재 속 소소한 일상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녀는 "나는 당신들보다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경험해봤으니 행복한 줄 알아요"라는 뉘앙스는 없으니 오해마시길. 지금의 건강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 언제 아팠는지 티도 나지 않을정도입니다. 오히려 아팠던 사람 맞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많다네요(이휴.. 그걸 질문이라고ㅜㅡㅜ). 누구든 각자 나름대로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고통과 마주하고, 외적이거나 내적인 갈등에 시달립니다. 누가 덧 낫다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희망과 살아갈 가치가 분명히 존재하며, 희망과 삶의 가치를 우리가 알아보지 못할 뿐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투병기를 읽는데, 간경화로 힘겹게 투병하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아버지를 상실했던 입장에선, 우리만 남기고 우리에게 불행만 주고간 아버지께 "이겨낼 생각이나 의지가 있긴 있었냐"며 원망했던 적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나와 우리가족이 고통스럽다보니, 우리만 남기고 간 아버지가 미웠지, 아버지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고통이 끝났으니 편히 쉬셔란 말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주변에 몸이 아파서, 힘겨워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세포 하나 하나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고 힘을 내라는 말은 함부로 전하진 않되, 희망을 잃지 말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꼭 기억하라는 말을 더합니다. 주변에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고통을 승화시킬 내재적인 잠재성과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는 걸,꼭 한번 각인시켜주는 에세이입니다.
■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
느낀 점에서 언급했듯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 힘겨워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마음만큼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겨운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그녀의 투병과 나의 고통을 비교하라는 것이 아닌, 우리 자체적으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고, 그 힘으로 우리가 숨쉬고 움직이고 살아가는 소소한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꼭 알게 되어, 고통을 승화하여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다.
■ 책 속 글귀
p. 22 즉 혈액삼합인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수치가 죄다 낮아서 몸이 이 모양이란 말이었다. 여태 원인불명으로 아팠던 모든 것들이 한 번에 설명되는 순간이었다. 정말이지 드르게 명쾌했다. 잠깐 편의저메 다녀오는 기분으로 나왔다가 어떨결에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강제 착석해서 병실로 올라가게 되었다. 부모님과 동생 모두 얼굴이 굳어 있는데 나 혼자만 키득거렸다. 사태 파악을 못한 게 아니라 웃음이 날 만큼 어이가 없어서였다.
p. 89 하루는 길고 시간은 안 가고, 할 일은 없고, 공허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좋을 지도 몰라서 늘 안전부절 못했다. 사실 뭔가를 한다고 한들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게 뻔했지만. 낮이 없었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자 6시간 정도면 딱 좋을텐데. 왜 힘든 건 무뎌지질 않는지 왜 겪어도 겪어도 처음처럼 힘든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p. 111 뭐 하나 좋은 일은 쥐뿔도 없고 병원 갈 때마다 낭떠러지 밑을 확인하고 오는 거 같아서 비참해. 세상이 밉고 어디에라도 원망하고 싶어하는 내가 싫어. 그래도 내 인생이잖아. 갖다 버리고 싶어도 내 인생인데 살아야지. 버텨야지. 일어나야지. 백 번 다짐하고 한번 무너지고 또 백 번 다짐하고 다시 무너지고 괜찮아, 사람이니까 무너지는 거야. 어쨋든 나는 나을 거잖아.
p. 119 삶을 포기하려는 사람과 살아보겠다고 남의 피를 꾸역꾸역 집어넣고 있는 사람이 한 공간에 있다니. 도대체 사는 게 뭐라고 우리는 이렇게 힘든 걸까. 죽는 것과 사는 것 둘 중에 하나는 쉬워야 하는 거 아닌가.
p. 120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단지 내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는다고, 일이 엉켰다고, 조금 힘들다고 죽고 싶다는 말을 쉽게 입에 올렸던 지난 날의 내가 부끄러웠다.
p. 182 나도 불어오는 바람 좀 맞아보고 싶다. 나도 광합성 하고 싶다. 나도 커피 마시고 싶다. 나도 머리카락 휘날리며 걷고 싶다! 나도 마스크 벗고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싶다!
p. 235 가만히 있으면 많은 연인이 머물렀다가 떠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며 사람 공부를 하기도 하고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나를 더 잘 알아가는 것이다. 타인을 마주하는 일이 어쩌면 좀 더 성숙한 나를 만드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p. 237 건강을 잃는 건 단순히 몸이 아픈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상실한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평소 건강한 몸에 감사하고 산 것도 아니면서 아프게 되면, 특히 큰 병에 걸리면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놀라워하고, 힘들어하고, 마음 아파한다. 영원할 거라고 약속했던 건강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 처럼.
p. 254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보통 그게 가까운 미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을 꿈꾸며 살아간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사고하도록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p. 260 툭 쳐도 재수없으면 죽을 수 있는 병. 이 병은 그런 병이다. 그렇지만 눈으로 보이는 질환이 아니다보니 겉으론 멀쩡해 보여서 사람들이 "아프다더니 멀쩡하네?" 라거나 "빈혈이면 수혈 받으면 되잖아"라고 말하기도 한다. 수혈 몇 번 받아서 될 일이면 제가 삼보일배를 하고 다니겠습니다. 내 병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도 싫지만 불쌍하게 보는 사람도 그다지 반갑지 않다.
p. 263 병원은 내가 가진 부끄러움을 바닥까지 들춰낸다. 누구에게도 낱낱이 보여야 할 필요가 없었던 내 몸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진찰대에 오르고, 혈소판이 낮아 생리가 어떻고 질 출혈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까지 주고받아야 한다. 섭취량과 배출량을 기록하기 위해서 화장실에 갈 때마다 소변컵을 들고 가야하며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땐 대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기도 한다.
p. 269 나는 너무 급했다. 따지 못한 학점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바스러져가는 몸을 보살폈어야 했고 졸업이 늦어졌다는 사실보다 어쩌면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더 걱정했어야 했다. 남들이 취업하고 인턴하고 연수 받을 때 나는 왜 이러고 있는지 한탄하지 않았어야 했다. 바쁘게 살던 관성이 남아서 투병하는 중에도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감정을 너무 많이 소모했다.
p. 280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마음을 먹고 문제를 똑바로 쳐다본 후 그 일을 다시 해보는 것이다. 직면하지 않고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없다고 했던가. 문제를 바라볼 용기조차 없었던 나는 이제 피해도 상관없는 것들까지 도전해볼 만큼 성장했다.
p. 287 '여길 나가서 일상생활이 가능해지면'이란 전제를 달고 하고 싶은 손꼽던 그 때를 떠올리면 환자복을 입고 바깥을 바라보던 과거의 내가 달려와 냅다 뺨을 후려치며 말한다. 그 정도 삶을 영위하는 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알면 잘 살라고. 지루할 만큼 무난한 이 일상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당연한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얼마나 절망했던가. 과거의 나에게 뺨 한 대 맞고 나면 부스스 정신이 돌아온다.
p. 288 내 과거는 현재를 지탱한다. 발 밑에서 흉터로 자리잡은 내 아픔은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주며 어떤 일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단단히 받치고 있다.
본 포스팅은 출판사의 책짓기 패널로 참여 후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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